인생주기/결혼 - 신혼부부

예전에 내가 알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요?

맑은샘77 2015. 7. 20. 22:38

예전에 내가 알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요? 베스트베이비 | 입력 2015.07.16 09:16

엄마의 감정 레슨 세 번째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남자인 '남편'. 우리는 왜 그의 뜻 없는 농담과 사소한 행동, 전화 한 통에 이렇게 서운하고 밉고 애가 타는 걸까?

케이블 방송이나 여성지를 보면 '남편을 사로잡는 여우 비법' 또는 '남편을 말 잘 듣게 만드는 기술' 같은 칼럼이 종종 등장해요. 상당히 자극적이고 솔깃하죠. 어떤 엄마는 '아, 여기서 말하는 것만 따라하면 남편이 내 말을 척척 잘 듣겠구나'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요. 게다가 솔루션1, 솔루션2 식으로 제시하는 방법도 그럴듯해요. 하지만 정말 이대로만 따라하면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고 개과천선(!)해 힘든 집안일을 척척 도와줄까요? 또 부부 관계가 좀 더 좋아질까요? 저는 여기에 대해서 좀 부정적이에요. 바보가 아닌 이상 세상 사람들은 상대가 목적을 갖고 자신을 대하는 걸 귀신같이 알아채거든요. 이제 갓 돌 넘긴 아이도 몇 번의 경험이 쌓이면 "아~, 이 약 하나도 안 쓰네, 진짜 달다"라는 엄마의 연극이 '자신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서'라는 걸 눈치 채니까요. 수년간 나와 한 이불을 덮고 산 성인남자사람, 남편이 이걸 모를까요? 우선 방송이나 잡지에서 시키는 대로 시도는 해봐요. 하지만 자신의 생각만큼 상대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들죠. '여우 비법'으로 남편과의 관계가 잠깐 좋아질 수는 있지만 반짝하고 마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남편과의 관계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보다 남편에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게 우선이거든요.

우리 사랑은 여전히 유효할까?

부부 상담을 할 때 "뭐가 제일 힘드세요?"라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이 뭔 줄 아세요? 바로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예요. 재미있는 게 남편에게 물어봐도 똑같아요. "우리 아내가 달라졌어요"라고 말하죠. 연애할 때는 안 그랬는데 결혼하고 나니 180도 변했대요. 덧붙여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절대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소연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 남자가 예전의 그 남자다' 또는 '이 여자가 예전의 그 여자다'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거예요. 사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아요. 나와 열렬히 연애하고 결혼식장에서 큰소리로 'Yes'를 외치던 그 남자가 변했을까요? 아니요. 안 변했어요. 정말 내가 아는,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그 남자가 맞거든요. 남편이 변한 게 아니라 남편을 대하는 관계 방식이 변한 거예요. 조금 풀어서 말하면, 남편에 대한 내 기대와 태도가 변한 거죠.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연애 시절 남편에게 기대했던 것과 지금의 기대가 똑같은지 말이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서로에게 기대하는 건 '사랑'이에요. 연애할 때는 상대에게 '아, 이런 게 사랑이지'라고 느꼈던 말이나 행동이 있었을 텐데요. 신기하게 결혼을 하면 '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게끔' 해주는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달라져요.

또 하나, 결혼 후에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져요. 연애할 때는 '과연 그가 나를 사랑할까?'라는 궁금함과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상대를 끊임없이 연구해요. 상대의 사소한 말이나 작은 행동에도 '왜 그럴까?' 호기심을 보이죠. 하지만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아요. 한집에서 살 부대끼며 살아야 할 '이 남자'의 실체에 대해 전보다 더 많은 호기심을 가져야 하는데 일단 결혼을 하면 상대에 대해 '다 알았다'고 생각해요. 주례 선생님과 가족, 지인들 앞에서 한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맹세를 '상대가 원하는 것을 따라주겠다'고 해석하는 거죠. 시시때때로 남편에게 드는 서운함과 섭섭함, 억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대개 여기서 시작돼요.

성격 차이부터 금전 문제, 육아나 집안일의 무관심, 시댁이나 친정과의 갈등 등 겉으로 드러나는 부부관계 문제는 다양해요.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내가 남편에게, 남편에게는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부족해서 생기는 갈등이에요. 어린아이들이 자신을 믿고 전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엄마가 필요한 것처럼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전문가들은 이걸 '성인애착 욕구'라고 말하는데요. 아이와 마찬가지로 어른도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은 안전하다는 믿음을 주는 '안전기지'가 필요해요. 그 안전기지를 중심으로 다른 일들을 탐험해가는 거죠. 2~3명도 아닌 세상에 딱 한 사람이면 되는데 대개 자신의 배우자가 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요. 따지고 보면 결혼을 한 것도 그런 이유잖아요.

성인애착과 유아애착의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유아애착은 부모가 아이의 돌봄과 사랑을 주도하는 반면, 성인애착은 상호작용이 필요해요. 두번째는 스킨십, 즉 성적인 관계가 동반된다는 거죠.

'내 안전기지가 되어줘', '내가 사랑받을 만한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켜줘' 라는 나의 바람을 솔직히 표현하기만 해도 남편에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어느 정도 해소되는데요. 문제는 이게 정말 쉽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충분히 친밀할 때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꺼내기 쉬워요. 남편이 나를 믿고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내 마음을 표현했을 때 혹시 남편이 거절할까 봐, 사랑이 없으면 혼자 서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사랑받고 싶다'는 나의 바람을 표현하는 게 점점 두려워져요

말하지 않는 아내 vs 눈치 없는 남편

평소 남편과 어떤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누세요? "몇 시에 들어와?", "오늘 뭐 사러 마트 가야 돼" 같은 '현실 대화'가 대부분일 거예요. 여기서 한발 나아간 게 "이게 옳아, 내 생각은 이래"라고 말하는 생각대화예요. 보통 남편과 나누는 대화는 여기까지예요. 그다음은 '느낌대화'인데요. 자신이 정말 원했던 감정과 바람을 나누는 대화, 즉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는 거죠. 마지막 단계는 '믿음의 대화'예요. 거절당하거나 내가 초라해질 것 같은 두려움을 넘어서는 믿음이 있고 상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못하는 대화가 그것이죠.

가령 남편 모르게 내가 시댁에서 서운한 일을 당했다고 쳐요. 남들이 볼 때는 큰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상태예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어디 좀 가자"고 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어떤 느낌이라는 것을 말하나요? 아니면 그냥 "나가긴 어딜 나가, 귀찮아"라며 짜증을 내나요? 속으로는 어쩜 인간이 저렇게 눈치도 없고 내 마음을 몰라줄까 싶어 야속한 마음이 들 거예요. 엉뚱하게도 이 마음은 '억울해'라는 느낌으로 이어지는데요. '왜 자기는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나는 해달라는 거 다 들어줘야 돼'라는 식이 되는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으면서 남편이 몰라준다고 생각하는 거죠.

만약 "나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시댁에 조금 서운했어.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것 같아서 화도 좀 났고"라고 말했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들 열에 아홉은 짜증을 내지 진짜 원하는 걸 말하지 않아요. 여기서 기름을 붓는 게 '당신네 집안'으로 시작하는 비난입니다.

시댁에 가기 싫어하고 시댁 식구들을 안 좋게 말하는 아내를 보며 남편들은 '시댁에 뭘 해주는 게 싫은 거구나', '시댁에서 일하는 게 힘들구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시댁에서 남편과 동등한 존재로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이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자연히 시댁에 가기 싫어지고 남편에게 "나는 이렇게 시댁에 잘하는데 너는 처가에 대체 뭘 하니?"라고 트집을 잡기도 하죠. 시댁에 서운한 감정,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말하면 이 남자가 나를 '오버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마음 쓰는 게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냐며 무시할까 봐 두려워서 입을 다무는 거예요. 남편 혹은 시댁 식구들에 느끼는 '억울함'을 들여다보면 사실 사랑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이 숨어 있어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말하는 방법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는 서로 언제 사랑받는다고 느낄까요?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조금 있어요. 아내는 자신이 배우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육아와 일상을 열심히 사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 남편과 가정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걸 왜 하겠어'라는 마음이죠. 하지만 남편들은 이걸 잘 모릅니다. 남편은 '경제적 책임감'이 사랑이에요. 마찬가지로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겠어. 당신을 사랑하고 우리 가정을 위하니까 그나마 참고 일하는 거지' 이런 마음이에요. 결국 상대를 사랑하니까 열심히 아이도 키우고 살림도 하고 돈도 버는 건데

이 일들이 부부 관계를 넘어설 때가 많아요. 분명히 굉장히 열심히 사는데 상대방에게 자꾸만 억울하고 답답한 기분이 드는 거죠.

남편에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단번에 해결하는 '특급 비법' 같은 건 사실 없어요. 그냥 남편을 믿고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그 속에 들어 있는 내 바람을 좀 더 자주, 솔직히 표현하는 수밖에요. 반대로 남편이 나에게 용기 내 다가올 때는 그 방식이 다소 서툴더라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세요. "당신, 이 말 나한테 꺼내는 거 쉽지 않았겠다"라고요. 이런 노력이 없다면 남편에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을 거예요.

 

◆ 감정 레슨 실전 편

Q. 네 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집안일이며 육아 분담에 적극적인 남편 덕분에 평일에도 어느 정도 휴식은 취하면서 직장생활을 해온 편이에요. 남편은 아이와 놀아주는 건 물론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도 종종 도맡곤 해요. 그럼에도 둘 중 한 사람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당연히 제 몫으로 넘겨 평상시와 달리 억울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가령 제각기 주말에 지인과 만남을 약속한 상태라면 대개 제가 알아서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돼요. 아침에 아이가 갑작스레 열이 나서 병원에 다녀와야 할 때도 제가 휴가 내는 게 당연하고요. 왜 저만 이렇게 희생해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네요. ID 왜나만

서운해, 서러워, 억울해… 이런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란 쉽지 않죠. 이런 속사정을 동네 엄마나 친구에게 말했다면 '복에 겨워서 그런 소리 한다'는 핀잔을 할지도 모르겠네요. 평소에 남편이 육아와 살림을 잘 거들어주는 데도 뭔가 억울한 이 느낌의 정체는 무얼까요?

이 가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왜나만 님이 느끼는 억울함의 정체는 '남편이 내가 애쓰고 있는 걸 알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둘 다 어떤 상황이 있지만 육아 문제나 집안일이 생겼을 때 양보하고 좀 더 애를 써 사건을 해결하는 건 아내의 몫이었죠. 물론 이런 성향의 남편은 "여보, 어떡하지? 방법을 찾아줘"라고 요청했다면 분명히 함께 고민해줬을 거라 생각해요. 어땠든 아내는 모든 상황을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고, 마음 더 깊은 곳에서는 남편이 "내가 못 챙겨서 미안해. 당신 고생했어"라며 내가 애쓴 걸 알아주고 이 사람이 나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갖길 바라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상대는 나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왠지 나만 손해를 보는 것 같고 억울한 느낌이 드는 거죠. 이럴 때는 "여보, 나는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무조건 엄마가 책임지는 게 당연한 건 아닌 것 같아. 나도 똑같이 직장에 다니는 거라 갑작스레 월차를 내는 게 쉽지만은 않거든" 또는 "내가힘들지만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건 당신과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나는 당신이 이걸 알아주면 좋겠어"라고 솔직히 말해보세요. 손발이 오그라드는 공치사 같다고요? 아니요. 말하지 않으면 남편이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내가 느끼는 불편한 느낌 또한 사라지지 않아요.

'당연히'에서 생기는 억울함

전업맘이 느끼는 억울함은 워킹맘의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릅니다. 전업맘의 하루를 한번 살펴볼까요?

아침에 남편과 두 아이를 학교며 유치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둘째가 돌아올 시간이 돼요. 그때부터 아이 간식 먹이고 학습지를 봐주죠. 잠시 휴식을 취할라치면 학교에 갔던 큰아이가 돌아올 시간이고요. 큰아이 간식을 먹인 후에는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각기 피아노학원과 영어학원에 데려다줘요. 아이들이 학원에 있을 동안 가까운 마트에 가서 장을 보죠. 힘든 마음에 남편에게 푸념이라도 할라치면 "온종일 집에 있는 사람이 바깥에서 일하고 온 사람한테 할 말이야?"라며 도리어 한심하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고요. 그러면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아등바등해야 하는지 억울한 느낌이 들죠. 세상 그 누구도, 심지어 남편조차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절망적이기까지 해요. 안타깝게도 엄마의 이런 마음 상태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향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자신도 모르게 아이한테 화를 내고 소리 지르게 되는 거죠. 그뿐인가요. 얼마 안 가 곧바로 후회하면서 '왜 엄마인 나만 힘들어야 하는지' 억울하고 '내가 부족한 엄마라 그런 건지' 죄책감까지 들지요. 이럴 때는 하루 날을 잡아 "집에서 하는 게 뭐 있어"라는 남편의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 말해보세요. "당신이 나와 아이를 사랑해서 밖에 나가 부지런히 일하는 것처럼, 나도 당신과 아이를 사랑해서 집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이성아 대표는요…

자람가족학교 대표이자 19세, 17세, 10세 삼형제를 둔 엄마. 10여 년간 강연과 상담을 통해 수많은 부모와 가족을 상담해온 부모 코칭 전문가로 E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비롯해 주요 일간지와 육아잡지 등에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가 이끄는 자람패밀리는 가족의 건강성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으며 자람가족학교와 자람부모학교를 운영 중이다.

 

기획: 한보미 기자 | 사진: 이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