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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례식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

맑은샘77 2015. 5. 23. 00:30

장례식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

내가 섬겼던 첫 번째 교회에서 주일 아침 설교를 하기도 전에 나는 장례 설교부터 하게 되었다. 화요일에 사택으로 이사 갔는데 금요일에 장례식이 있었다. 베스 토머스(B. Thomas)라는 성도는 102세였는데, 내 생각에 그 성도는 제일침례교회의 새로운 목사가 부임하고 나서야 눈을 감고 싶어한 것 같다.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신학대학원 하계 인턴 기간 동안, 나는 몇 건의 장례식을 보조했고, 한 건은 내가 직접 인도하기는 했으나, 이번 경우는 내가 직접 몸담고 있는 교회의 장례식이었다. 베스 토머스 성도의 장례식에서 그녀의 지나온 세월과 풍성한 믿음에 대해서 설교한다는 것이 그녀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 없는 나로서는 크나큰 어려움이었기에, 나는 그녀의 가족도 만났고, 성경 본문을 샅샅이 뒤져보고, 설교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대충 훑어보고 나서 설교를 작성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다른 특별 행사보다도 장례식에 관해서 쓴 책들이 더 많이 나와 있지만, 장례식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 가장 어려움이 많은 행사이다. 죽음은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례식은 목사의 잘 짜여진 스케줄을 항상 침범한다. 장례식의 메시지는 그 주에 설교해야 할 또 한 편의 설교이기 때문에 힘든 고역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목회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장례 설교의 신학

우리는 먼저 죽음에 대한 신학을 가질 필요가 있다. 더 구체적으로, 설교자들은 왜 자신이 장례식에서 설교를 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19세기의 네덜란드 신학자 반 우스터지(J. J. Van Oosterzee)는 이렇게 말한다: “우템베르그(Wurtemberg) 교회 법령에 의하면, 장례 연설은 세 단계의 목표에 답하기 위해 고안되어 있다. 그것은 ‘부활의 기독교적인 희망을 대중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며 사랑을 최후로 간증하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신학적으로 장례 예식은 하나님께 드리는 한 예배다. 에드가 잭슨(Edgar N. Jackson)은 “장례 예식은 사소하지도 진부하지도 않은 예배 행위의 기회다”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복음의 소망이 장례 설교의 중심이 돼야 한다. 장례식에서는 죽음이 언급되고, 고인이 언급되고, 하나님이 언급된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소망이 언급된다. 성경을 초점으로 하여 청중들은 기독교 신앙의 영원한 진리로 위안을 얻는다. 설교자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랑의 경이로움과 그의 은혜의 풍성함에 관하여 명확하게 언급해야 한다.

토머스 롱(Thomas G. Long)은 “기독교의 장례식에서 주로 하는 일은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적절한 구성과 언어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마크 채프먼(Mark Chapman)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일으키셨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그의 생명의 성령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죽음에 대하여 생명의 승리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장례식에서 할 수 있는 진짜 기독교적인 언어다”라는 데 동의한다.

목회자들은 장례식 설교에서의 전도의 역할에 관하여 많은 논쟁을 벌인다. 그 논쟁은 전도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여부라기보다는 전도의 규모나 범위와 더 관련이 있다. 설교는 본질상 전도적이다. 혹자는 장례식을 적극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독점적인 기회라고 여긴다. 토니 월터(Tony Walter)는 자신과 함께 자랐던 교회를 떠난 한 친구에 관하여 쓴다.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교회 목사님은 장례식을 세 시간 동안 인도했다. 그 설교는 “주로 그 아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의 기쁨과 그리스도와 함께하지 않은 죽음이 가지는 공포를 생각하게 했으며, 그에게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오라는 부르심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월터의 이야기가 다소 극단적일지는 모르나, 장례식에 있어서의 우리의 목표는 청중들을 복음의 약속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혹자는 유가족이 너무 슬픈 나머지 설교를 들을 수 없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냥 기도하고 성경을 조금 읽기만 하라”고 그들은 말한다. 어떤 예배에 관한 서적들은 설교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설교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례식에서 하는 설교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복음을 거의 듣지 않거나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9세기의 신학자 크리스트리엡(Christlieb)은 장례식에서의 설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장례 설교는 가장 어렵지만 가장 아름답고 가장 효과적인 목사의 기능에 속한다. 장례 설교의 임무는 하나님이 보내신 슬픔을 몰아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정제하고 성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할 때, 그리스도의 증인인 기독교 공동체는 그 말씀에 동의할 수 있고 그 말씀에 따라 살도록 격려 받게 된다. 우리의 믿음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며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

설교를 올바르게 하는 방법

요컨대 장례식 설교는 성경에 기초한,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 지향적이면서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설교자로 하여금 자신의 청중들에게 확고하고 감정이 이입되는 설교를 전달하도록 도울 것이다. 덧붙여서 모든 설교는 청중 지향적이어야 한다.

설교를 청중과 연결하라

가장 효과적인 장례식 설교는 성경과 청중에 접촉점이 있고 예배의 흐름에 부합하는 설교이다. 설교자는 고인과 유가족을 이해하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청중들을 알도록 힘써야 한다. 교회에 있는 가족을 위해 설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을 고려해 설교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특별槿先?설교에 있어서 만약 설교자가 고인의 유가족을 안다면, 설교자는 장례식에 참석할 청중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가 생기게 될 것이다.

만약 설교자가 장례식을 효과적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장례식은 각 고인마다 달라야 한다. 어떻게 목사들이 자신의 장례식 설교들을 각 고인마다 다르게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 교회에서의 목사의 임기와 그 유가족과의 관계 등을 포함한 다수의 요소들과 관련이 있다. 장례식을 각 고인마다 특별하게 하는 비결 중 하나는 심방 기록부를 계속하여 업데이트시키는 것이다. 가족의 이름, 관계, 취미, 기호 그리고 달란트 등에 관한 기록이 설교에 들어갈 정보가 될 수 있다.

성도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이 왔을 때는 그 유가족을 방문하여 노트를 하라. 질문을 하거나 다음과 같이 유도하는 말을 하라: “고인에 대한 당신의 기억을 말해 주십시오”, “조문객들이 그에 관해서 어떤 것을 기억해 주기 바라십니까”, “그가 가장 좋아했던 찬송가와 성경 본문이 무엇이었습니까”. 고인의 가정에 방문할 때에, 사진이나 고인이 가졌던 취미 혹은 기호들에 관해서 질문하라: “그녀의 취미나 기호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녀를 생각할 때 어떤 것들이 마음에 떠오릅니까”. 이런 질문들이 장례 설교를 구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훌륭한 설교자들은 설교를 청중과 연결시키는 것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안다. 내가 슬픔을 통해서 유가족들과 함께 걸으며 목회에서 가졌던 경험은 장례 설교와 예배가 끝난 후에도 오래 지속되는 하나의 접촉점을 만들어 낸다. 그것을 목회라 부른다. 우리는 청중을 염려하고, 그들과 함께 있어 주며,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알고, 그들을 성경으로 인도해 줌으로써 우리의 청중과의 연결점을 형성할 수 있다. 설교자로서 우리는 어려운 시기 동안 유가족의 곁에 있을 수 있는 특권을 갖는다. 우리는 그들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어 아마도 우리가 깨닫는 것 이상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내가 아는 어느 목사는 “나는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장례식 동안 유가족들을 돌본다”고 말한다.

장례 설교는 초점이 있어야 한다

장례 설교의 목적은 시기상 다른 형태의 설교와 다르다. 앤드류 블랙우드(Andrew Blackwood)는 장례 설교의 목적은 “전도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목회를 위해서이다. 그 목표는 슬퍼하는 친구들을 위로하는 것, 즉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 안에서 강건해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브라이언 채플은 “설교자의 주된 임무는 위로하는 것이지 전도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전도적 진리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이것은 장례 설교이다. 주된 목적은 죽음의 고통에 직면한 사랑하는 유가족들에게 복음의 소망을 가져다주는 것이다”고 말한다.

목회자들은 장례 설교에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해야 한다. 워렌 위어스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례 메시지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문제에 대한 충분한 해답으로서 높여 드려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성경에 기초한 설교는 청중 지향적이어야 한다. 한 편의 장례 설교는 고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애도하는 사람들, 즉 유가족과 친지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는 소망에 관해서 듣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 청중 그리고 시기를 염두에 둔 목적 진술문을 구성해야 한다. 다음 문장들은 목적 진술문의 견본이다:

이 설교를 듣고 난 결과로, 나의 청중들[애도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위로 받을 것이다. 이 설교를 듣고 난 결과로, 나의 청중들[애도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이 설교를 듣고 난 결과로, 나의 청중들[애도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는 우리가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장례 설교는 독특해야 한다

어떤 설교자들은 모든 장례식마다 ‘찍어낸 듯한 똑같은 설교’를 사용한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유혹을 피하려고 노력하라. 모든 장례식은 다 독특해야 한다. 별세한 모든 사람은 독특하고 고유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실이 정형화되고, 반복되고, 재생된 설교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이다.

내 친구 중 하나가 미시간 주에 살던 남편을 잃은 어느 한 여성의 실화를 이야기해 주었다. 장의사가 그녀에게, “목사님에게 장례식 감사 사례비로 얼마를 드렸으면 합니까, 25달러요 아니면 150달러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장의사에게 그것을 결정하기 전에 예배가 끝난 다음까지 기다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 목사는 자신만의 판에 박힌 설교, 같은 본문에, 동일한 기도를 했다. 그녀는 그 목사가 똑같은 설교를 하는 것을 전에도 여러 번 들었었다. 장의사 집에서 나가는 길에, 그 미망인은 장의사에게 “25달러만 주도록 하세요”라고 말했다.

어느 장의사가 당신이 잘 모르는 고인에 대한 설교를 의뢰할지도 모른다. 만약 장례식 바로 전날 전화를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전에 사용했던 본문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본문을 그 특정한 장례식을 위해서 구성하라. 엘틴 그리핀(Eltin Griffin)은 “특별 행사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자가 특별 행사 설교에 줄 수 있는 특별한 변화이다”고 주장한다. 장례 설교를 독특하게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변화는 설교 중심 아이디어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다:

은혜, 구원, 용서, 믿음, 기독교인의 소망으로서의 죽음에 관한 신학

적절한 장례식 본문 , 고인의 관심과 맞는 본문,

고인의 인격과 특성을 반영해 주는 본문, 고인이 가장 좋아했던 본문

고인의 이름이나 직업을 사용함으로써 고인의 독특성을 그려 낼 수 있는 본문

유가족들은 위에서 언급한 항목 중 아무 것으로부터 하나의 본문을 제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정은 목회자에게 맡겨진다. 목사는 본문 선택을 하기 이전에 먼저 고인과 유가족의 신앙을 평가해야 한다. 이것이 되면, 하나의 본문을 선택하여 그 상황에 적합한 설교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장례 설교는 간결해야 한다.

장례 설교는 간결해야 한다. 다른 행사 때에 하는 설교는 몇 시간씩 계속될 수 있다. 암브로스(Ambrose)와 그레고리(Gregory)의 장례 설교의 길이는 75분에서 90분 정도였던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어떤 19세기 장례 설교는 적어도 그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칼빈 랏츠(Calvin Ratz)는 “장례식 메시지는 길지 안아야 하지만 믿음을 붙잡을 수 있는 내용을 제공할 정도로는 길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출판된 설교를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면, 장례 설교는 짧아야 한다. 위에서 언급된 90분 짜리 설교와는 달리, 목회자들은 일반적으로 최대 10분에서 15분의 분량을 설교한다는 데 동의한다.

장례 설교는 명확한 중심 아이디어를 지녀야 한다

설교자가 고인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게 되면, 다음 단계는 본문을 정하는 일이다. 앤드류 블랙우드는 장례 설교에 관한 자신의 저서에서, 성경 본문을 선택하는 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임박한 장례식에 필요한 요구를 확실히 충족시켜 주는 본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일지 모른다… 본문은 두드러져야 하고 주의를 사로잡아야 하며 단번에 고인에 대한 추억 속으로 그 본문 자체를 고정시킬 수 있어야 하니까”.

장례 설교를 준비함에 있어, 칼빈 랏츠는 자신은 “대부분의 지나치게 뻔한 본문으로부터 멀리하려 하지만, [자신은] 불분명하고 난해한 본문으로부터 멀어지려고도 애쓴다”고 조언한다. 워렌 위어스비는 다음과 같은 말로 동의한다: “애매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본문이나 긴 설명을 필요로 하는 본문을 바탕으로 메시지를 구축하지 말라”. 반면에, 모호한 본문이 가장 의미 있고 기억할 만할 경우도 있다. 설교를 그 행사와 청중에 맞게 만들되, 다음을 꼭 기억하라: 복잡한 본문과 성경 주해는 청중을 답답하고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위어스비는 “사람들이 슬픔이라는 계곡을 통과할 때에는, 조직신학의 추상적 개념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돌보시고 위안을 주시는 구세주를 나타내는 성경의 이미지는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장례 설교에 관한 가장 심도 있는 실제적 연구 중 하나가 1930년 중반에 얼 다니엘스(Earl Daniels)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의 연구는 장례 설교에 관하여 영구한 가치를 지니며, 장례 설교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그가 한 제안은 주목할 만하다. 다니엘스는 장례 설교를 전기적, 상황적, 교리적이라는 세 개의 범주로 분류한다: 전기적 설교는 고인의 삶의 체험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이러한 양식의 설교는 그 삶이 그 공동체에 대하여 가지는 중요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상황적 설교는 특별한 상황을 다룬다. 고인은 살인, 자살, 혹은 사고 같은 특별한 상황 속에서 세상을 떠났을 수 있다. 교리적 설교는 그 주위를 개인이나, 특별한 상황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에서 불러일으키는 죽음과 그 문제들의 경험에 집중시킨다.

전기적 설교

다니엘스의 분류는 큰 도움이 된다. 그 이유는 설교자들에 의해서 전혀 고려되지 않을 수도 있을 분류들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전기적 설교에서는 초점이 반드시 사람에게 맞추어질 필요는 없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한 개인적 관점으로 초점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진다. 성경의 진리가 고인의 삶을 언급함으로써 모호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대신, 마크 코펜저(Mark Coppenger)가 자신의 설교에 대해서 고찰하듯, “고인의 영광을 위한 사례를 만들지 말고, 고인의 삶으로부터 하나의 항목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소개하도록 시도하라”.

전기적 설교에 고인의 직업, 본 교회 생활에 대한 그의 역할이나 공헌, 특별한 기호, 민간 활동들, 친구, 취미, 혹은 좋아했던 일 혹은 개인적 특성 등을 혼합해 넣을 수 있다. 그 설교는 유가족들이 해 주는 해학적 이야기, 고인이 자신에 관해서 하곤 했던 이야기, 친척, 친구, 혹은 이웃들로부터 들은 해학적 이야기들이 포함될 수 있다. 존 맨셀(John Mansell)은 “고인이 어떻게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문구를 찾아내라”고 제안한다. 이 문구는 본문과 고인의 삶을 통합하여 표현할 수도 있으며, 이러한 문구는 설교적 아이디어가 된다.

짐 포로셔스(Jim Procious)는 내가 첫 번째로 시무했던 교회에서 사랑 받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시간을 헌신적으로 바쳤다. 그는 귀중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인 프로셔스(Procious)는 ‘귀중한’이라는 영어 프레셔스(precious)와 비슷한 발음이 난다. 그의 장례식에서 한 설교에서, 나는 이 두 글자를 가지고 언어 유희를 하여 청중을 시편 116편 15절로 끌어들였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precious) 보시는도다”.

전기적 설교를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삶을 회고” 하는 것이다. 시편 84편은 나의 친구 목사가 73세의 진 솔터(Gene Salter)라는 성도의 장례식에 사용한 본문이었다. 수년 동안 진(Gene)은 예배 안내 위원으로 섬겼었다. 그 설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소망과 고인은 그 소망을 살아 생전에 누렸을 뿐 아니라 지금도 영원히 누리고 있다는 말로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그 목사는 기독교 소망의 견지에서 진(Gene)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서 고인이 어떻게 교회의 삶에 공헌하였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입구를 지키는 자리에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그 목사는 이야기하며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유지하면서 진(Gene)의 전기적 생애를 설교로 엮어 냈다.

고인의 이름이나 직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전기적 설교의 또 다른 각도이다. 나의 제자 중 한 명이 지문 채취 전문가였던 한 91세 노인의 장례식 설교를 했다. 본문은 디모데후서 4장 6절에서 8절이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는 사도 바울이 접촉한 모든 사람들에게 남긴 흔적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존 그롤리(John Growley)라는 91세의 노인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남긴 흔적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그는 지문을 판독, 수집, 확인하는 존(John)의 직업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그 설교적 아이디어는, “존(John)은 세상에 그의 흔적을 남겼고 그의 흔적은 그리스도의 흔적이었다”였다. 전기적 설교에서 나타나는 설교 과정의 변화는 카메라 렌즈를 고인으로부터 설교를 듣고 살기 위해 투쟁하는 애도하는 사람들에게 옮기는 것이다. 롱(Long)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례식에서 고인의 생애를 이야기하고 고인 없이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복음이라는 더 큰 이야기의 틀 안에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장례식에서 듣는 이야기는 고인의 전기적 생애를 넘어서 복음의 세례적 이야기로 끌고 가야 한다. 전기적 설교가 청중으로 하여금 궁극적인 초점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보는 것을 결코 저해하지 않는다.

상황적 설교

상황적 설교란 장례식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맞추는 설교를 말한다. 다니엘스(Daniels)는 첫 번째 타입의 환경을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이용하는 것’으로 지목하고, 두 번째 타입의 환경을 ‘어려운 상황을 다루는 것’이라고 지목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에 관하여는 만약 고인이 젊었거나, 늙었거나, 결혼을 했거나, 독신이었거나, 자녀가 있거나, 없거나 한다면 고인의 죽음에 대한 중대성이 확대될 수도 있다. 아니면, 장례식이나 죽은 시기가 개인적 행사의 기념일, 생일, 결혼 기념일, 혹은 공휴일에 일어날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사망한 날 혹은 장례식 날의 날씨 상태 혹은 가족 관계가 참석자들을 복음의 소망으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요소들이 될 수도 있다.

고인이 사망한 원인, 특히 자살, 살인, 치명적 병, 혹은 사고 같은 사례들 또한 설교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의 원인을 언급하는 것이 청중들로 하여금 동일한 출발점에서 슬픔에서 회복하기 시작하도록 해 줄 것이다.

유아나, 어린이, 혹은 청년의 사망은 특히 어렵다. 나는 출생 직전 사망한 네 쌍둥이의 장례식을 인도한 적이 있다. 그 젊은 기독교인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을 잃은 것을 슬퍼하였다. 본문은 요한계시록 7장 9절에서 17절이었다. 그 본문을 주해함으로써 얻어진 아이디어는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수고를 견디는 자는 하나님에 의해 보호를 받을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영원히 돌보실 것이다’였다. 그 상황과 부모와 회중을 염두에 두면서 나는 설교적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참석한 모든 이들의 눈물은 걷혔고 하나님이 찬양 받으셨다.

모든 목사들이 처하는 또 하나의 어려운 상황은 비 기독교인의 장례식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람의 장례식에서 설교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힘들다. 설교자들은 아마도 고인의 유가족과 또한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할 것이다. 따라서 유가족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설교자들은 고인의 복음에 대한 수용성의 여부를 판단하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교리적 설교

다니엘스(Daniels)의 마지막 범주는 교리적 설교인데, 교리적 설교에서는 기독교인의 소망에 대해서 말해 주는 본문을 선택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 미래의 삶에 대해서 기독교인이 가질 수 있는 소망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브라이언 윌커슨(Bryan Wilkerson)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어느 한 어린 소녀의 장례식을 인도할 때에 로마서 8장 28절에서 30절을 가지고 기독교의 소망에 관해서 청중들을 가르쳤다. 그의 설교적 아이디어는 자신이 설교했을 당시 유명했던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영화에서 나온 것이다. 윌커슨(Wilkerson)은 본문과 상황을 함께 그의 설교적 아이디어에 짜 넣어서,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영원히 흐릅니다’라고 만들었다.

교리적 설교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장례 설교를 교회력이나 그리스도의 삶에서의 구체적 사건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신학적 핵심은 교회력에 해당하는 계절에 적합한 본문에 의해 주어지며, 고인의 생애가 그 속에 엮어진다. 강림절 동안에 일어나는 장례식은 준비와, 소망, 혹은 바라봄의 신학을 나타내 주는 본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추도 설교

추도 예배는 점차 더 많이 생겨나고 있다. 추도 예배는 고인이 세상을 뜬 후 수 일, 수 주일, 혹은 수 개월 내에 이루어진다. 여러 가지 이유로 유가족의 일원이나 친지들이 고인의 사망 이후 바로 모여서 애도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중에 고인을 위한 추도 예배가 열리는 것이다. 7월의 어느 날, 나는 그 전년 12월에 세상을 떠난 루쓰 레노(Ruth Reno)라는 성도의 추도 예배를 인도했다. 그 해의 일가 친척의 상봉은 7월로 예정되었으며, 그때가 가장 적합할 것으로 그 가족들은 추도 예배의 일정을 잡았다. 그 여 성도의 죽음을 추도한 설교에서, 나는 시편 103편 13절에서 19절을 그 성도로부터 받았던 편지에서 발췌한 내용과 함께 엮어서 넣었다. 설교적 아이디어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 자신도 우리가 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압니다’였다.

시신을 화장하는 것 또한 유가족들이 추도 예배를 하기로 선택한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나의 부친은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후 화장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의 고향에는 화장터가 없어서 우리는 장례식에 당신의 유골을 안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추도 예배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추도 예배에서 하는 설교는 장례식에서 하는 설교와 거의 동일하다.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추도 예배는 예식에 시신이 없다는 것과 성도의 죽음 이후에 예식을 하게 되기까지의 시간의 차가 장례식보다 많이 난다는 것이다.

설교하기

이제 설교자는 장례 설교를 시작하는 일만 남았다. 설교자는 유가족과 만났고, 청중을 파악했고, 본문과 씨름하여 설교를 작성했다. 목회자들은 설교할 때에 몇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애도자들과 회중에게 눈 응시를 하고 그것을 끝까지 유지하라.

따듯하며, 동정적이고, 친절하게 말하라.

몸짓과 목소리에 주의하라.

설교적 아이디어를 적어도 세 번 반복하라.

대화체를 사용하라.

발음을 분명히 하고, 두성 발성을 하라.

고인과 유가족의 이름을 외우고 있어라.

감정이입이 되어야 한다. 원고 없이 설교하라. 간결하게 설교하라.

위의 사항들 중 몇 가지는 다른 특별 행사 설교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과 같다. 장례 설교를 잘 하기 위해서 위의 사항 중 몇 가지를 더 강조하여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설교자의 설교 방식은 단순히 대화하는 것 이상의 의사소통을 의미한다. 어느 설교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장례식에서 목회자가 저지르는 실수 중 가장 최악의 실수는 사무적이고, 직업적이며,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또 다른 어느 목회자는 “설교자가 전달하는 메시지 자체뿐만 아니라 그가 보이는 매너와 메시지 전달 방식이 추도 예배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이런 부분들은 인쇄로 재현해 낼 수가 없다”고 썼다.

영국의 설교자 웨슬리 카르(Wesley Carr)는 “슬픔을 당한 사람들이 겪는 감정적 탈진감 때문에, 그들은 실제적으로 이야기되는 내용을 거의 들을 수 없다. 이상한 말 같지만, 사람들은 품행과 태도를 설교의 내용보다 더 잘 기억한다”고 말한다.

설교자들은 따듯하고, 인간적이며, 확신에 찬 모습으로 설교를 전달하여야 한다. 로버트 블레어(Robert Blair)는 “설교자가 표현하는 확신과 설교자가 전달할 메시지는 애도하는 참석자들에게만 유익할 뿐 아니라, 설교자 자신의 영적인 잘됨과 갱신으로 인도해 준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죽음이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성직자들에게도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스튜어트 브리스코(Stuart Briscoe)도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에 동의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최대한 따듯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진실하게 보여 줘야 하며, 성경의 진리를 말함에 있어서는 조금도 물러섬이 없어야 하고, 메시지가 설교처럼 들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자연스럽고, 대화하는 듯이, 감정을 잘 이입시켜서 전달해야 한다.”

때로는 설교자가 훌륭하고 적실한 설교적 아이디어를 본문에서 찾아내지만 설교자가 말하는 내용, 말하는 방식, 혹은 태도로 인해서 그 설교적 아이디어가 모호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콧 깁슨(고든콘웰신학교 설교학 교수)

출처 : 낙송사랑방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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