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황보람 ,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기자][[the300-보호받지 못하는 '제보자']]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의 실제 모델은 류영준 강원대 의대 교수다. 황 박사의 연구윤리 위반 등 혐의가 확인된 뒤 류 교수는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보자들은 류 교수처럼 당당하게 사회로 돌아오지 못한다. 어렵사리 진실을 증명해 생업 현장에 복귀한다고 해도 '배신자'라는 꼬리표는 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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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각오했지만 확인한 점은 공익제보가 손해를 본다는 사실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은 파면 당하죠. 복직해도 10년 동안 아무도 식사를 같이 할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공익제보 이후 감사는 축소·은폐되고 공익제보자 보호는 전혀 없어요."
홍진희씨가 '사학을 바로세우려는 시민모임'(사바모)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홍씨가 영훈국제중학교 입시 비리를 제보한 댓가는 딸에게로 향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딸은 자신을 예뻐하던 선생님에게 "멍청한 계집애"라는 눈총을 받아야 했고 결국 전학을 택했다.
홍씨는 검찰 제보 단계부터 철저한 신분 보호를 요청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고 전했다. 수사 조서에서부터 홍씨의 실명은 고스란히 노출됐다. 수사 접견권·열람권을 가진 학교 측 변호인은 홍씨가 내부고발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학교에 알렸다.
법원도 홍씨를 지켜주지 못했다. 판사는 재판을 비공개로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비공개 대상은 일반 방청객과 언론뿐이었다. 학교 측 관계자들은 법정에서 홍씨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수사 단계나 법정에서 공익제보자를 보호를 어떻게 하라는 메뉴얼이 전혀 없는 것 같다"며 "법정에서 그냥 얼굴이 다 드러났고 신분이 누구고 학교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물었다"고 말했다.
개인 사업자인 홍씨의 경우는 그나마 피해정도가 낮은 편이다. 민간기업이나 학교 등 조직에 소속된 경우 공익제보는 곧 '밥벌이의 종말'을 의미한다.
법에서는 공익제보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했지만 그 판단을 내리기까지 제보자가 보호받을 수단은 없다. 또 제보가 사실이 아닐 경우 명예훼손 등 역고발은 제보자 혼자 감당해야 한다.
제보자들은 현실적으로 완벽한 신변 보호가 어렵다면 사후 대책에 힘써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공익제보를 할 경우 '혜택'이 따르는 환경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은 "공익신고자를 공공기관에서 우선 채용하는 등 규정을 둬서 해고나 보복을 당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사바모 관계자도 "공익신고를 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우리 사회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익신고는 했는데 공익신고자는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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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 미국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은 '공익 제보자'로 인해 실체가 드러났다. 백악관의 사건 은폐 시도도 믿을만한 제보와 취재 앞에 무릎을 꿇었다.
2005년이 돼서야 제보자는 스스로 정체를 밝힌다. 사건 당시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로. 33년동안 그는 '익명' 속에 보호될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의 내부고발자보호법은 더욱 발달해 20여개의 연방법률과 함께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공익신고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쏟아진 개정안들을 보면 우리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2011년 9월 제정된 '공익신고자 보호법'에서는 누구든지 공익침해행위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공익신고를 할 수 있다. 공익신고자들에 대한 비밀보장 및 보호조치, 보상금·구조금 지급 제도도 마련됐다.
하지만 법이 시행되자마자 곳곳에서 구멍이 발견됐다. 현행법이 공익침해행위를 너무 협소하게 한정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현행법에서는 180개 법률을 '위반한 행위'로 공익침해의 범위를 제한한다. 국민의 건강·안전·환경·소비자 이익·공정한 경쟁 등 5가지 분야에서만 공익침해가 적용된다.
국회에서는 허술한 공익신고자보호법을 보완하기 위해 3년 동안 14건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대부분 개정안이 공익침해 범위와 보호 의무 확대에 주안점을 뒀지만 통과된 법은 없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1년 11월 발의한 개정안에서는 현행법에서 공익침해 관련 5가지 분야를 열거한 것을 '예시'로 바꿔 다양한 공익을 포함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또 같은 당 박주선 의원은 공익침해 적용 대상 법률에 '교육기본법'이나 '사립학교법' 등 교육 관련 법률을 추가해 사학비리 제보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구체화 된 법안을 지난 6월 발의했다. 개정안에서는 동구마케팅고의 문제점을 교육청에 제보했다가 신분이 노출돼 파면당한 선생님이 '사학비리'는 공익침해에 해당되지 않아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해 마련됐다.
공익신고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을 경우에도 신고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공익침해행위의 발생이 '의심'되는 경우도 공익신고의 정의에 포함해 합리적 의심으로 신고했지만 불이익 조치를 당하는 모든 경우를 보호할 수 있도록 법에 '명문화'하는 개정안을 냈다.
재판부도 공익침해를 보다 광범위하게 해석할 수 있는 판례를 남기기도 했다.
2012년 서울고등법원은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전화투표 관련'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에 대해 "신고내용이 사실이 아니어서 공익신고자보호법 등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고 내용 자체가 그 벌칙 또는 행정처분의 대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행위"라며 "그 신고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없었던 경우에는 공익신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공익신고는 어디에? '제보자' 보호 않는 권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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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직원이 회사의 비리를 국회의원 측에 고발했다가 신원이 누설되는 일이 생겼다. 제보를 받은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추가 자료를 요청하면서 A씨의 이메일을 사측에 전송한 것이다.
공익신고 접수기관은 국민권익위원회와 수사기관, 국회의원 등이다. 하지만 공익제보자들은 접수기관에서 만족할 만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제보자의 신분은 도처에서 노출됐고 보복 절차는 법의 보호보다 빨랐다.
국회 정무위원회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권익위로부터 제출받은 '공익신고 현황'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접수된 공익신고는 총 5100건이었다. 공익신고 건수는 2011년 292건, 2012년 1153건이던 것이 지난해 2876건으로 증가했다.
반면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조치는 미흡했다. 신 의원실에 따르면 공익신고 후 신고자가 신청한 보호 요청은 총 40건이었지만 이를 권익위가 받아들여 실시한 건수는 13건에 불과했다. 특히 직장내 파면, 전보조치 등에 대해 사전에 예방하는 불이익 금지조치는 단 한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법적으로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로는 △보호조치(사후에 불이익 등을 원상회복하는 조치) △신변보호(물리적 신변 위협 보호) △신분공개 경위 확인(공익제보후 신분공개된 과정 파악) △불이익 금지조치(사전에 인사상 불이익 등 예방 조치) 등이 있지만 실제로 혜택을 보는 제보자는 극히 드물다.
신 의원 측은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은 사전적 예방 효과는 거의 없고 불이익을 받은 후 사후적으로 보호 요청을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드물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권익위가 독립성을 결여한 데다 공익신고자 보호를 부서 업무의 일환으로 격하시켜 유명무실해 졌다고 분석한다.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은 "권익위가 공익적인 독립기구로 운영되고 기능별로 분화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권익위 위원 15명 가운데 9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이들이 교육 등 여러 업무를 겸하는 환경에서 공익신고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익위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고충위와 청렴위, 행정심판위를 한 데 묶어 장관급으로 격상시킨 조직이다. 청렴위가 권익위에 흡수되면서 부패방지 업무도 위원회 내 하나의 국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청렴위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반부패 등 제도개혁 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독립적인 청렴위 운영의 필요성을 공유했다.
유 사무총장은 "독립적인 기구가 마련되면 현재 공익신고자에게 떠맡겨져 있는 공익침해 입증책임 등 부담도 경감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공익신고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신고자가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 황보람 ,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기자 shyun88@mt.co.kr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