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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 살해한 여성

맑은샘77 2013. 6. 9. 14:12

[단독]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 살해한 여성

경향신문 | 류인하 기자 | 입력 2013.06.09 08:10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살해한 부인에게 법원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양형기준상 참작동기가 있는 살인이더라도 수법이 잔인할 경우 징역 5~8년이 양형의 범위이지만 재판부는 장기간 가정폭력에 노출됐던 피고인의 상황을 고려해 원심의 징역 5년형보다 1년 감형한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어머니이자 피고인의 시어머니가 법정에 나와 눈물로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한 점도 피고인의 형량 감경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서울고법 형사8부(이규진 부장판사)는 남편을 흉기로 십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로 부인 ㄱ씨(41)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4년으로 감형한다고 7일 밝혔다. 앞서 ㄱ씨에 대한 1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당시 배심원들은 전원 유죄로 판단하면서 5명이 징역 5년을, 2명이 징역 4년, 2명이 징역 6년으로 양형의견을 권고했다.

ㄱ씨는 지난해 7월 늦은 밤 술에 취해 들어와 자신을 폭행하고 자고 있는 큰아들까지 깨우려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부엌에 있던 22.5㎝ 길이의 흉기로 남편을 12회 찔러 숨지게 했다. ㄱ씨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남편은 평소 지속적으로 ㄱ씨와 아이들을 폭행했다.

ㄱ씨가 살인을 저지른 날에도 남편은 만취상태에서 집에 들어와 ㄱ씨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자신의 옷에 소변을 봤다. 남편을 재우려 침대로 데려갔지만 남편은 또다시 ㄱ씨의 얼굴에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부었다. ㄱ씨는 경찰조사에서 "'이제 정말 지겹다. 이렇게 살면 뭐하나'하는 생각이 들어 남편을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진술했다.

ㄱ씨는 창밖에 개소리가 들린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남편이 이윽고 큰아들 방으로 들어가 횡패를 부리려 하자 숨겨놨던 흉기로 남편을 찔렀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남편이 숨진 사실을 깨달은 ㄱ씨는 큰 아들에게 "119에 신고하라"고 한 뒤 옷을 갈아입고 경찰에 자수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들은 "피고인의 죄가 무겁고 수법이 잔인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유가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자수한 점, ㄱ씨가 가정폭력에 장기간 노출돼 있던 과정에서 범행이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매맞는 아내 증후군' '우울증' 등의 심신미약 상태였기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ㄱ씨의 항소이유를 배척하면서도 ㄱ씨의 형을 감경했다.

재판부는 "만취상태에서 저항도 할 수 없던 피해자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매우 중하고, 어떠한 이유로도 희생돼서는 안 되는 고귀한 인간의 생명이 희생됐다"면서 "또 지속적인 가정폭력으로부터 견딜 수 없는 고통이나 자녀들에 대한 위해를 막겠다는 목적이나 범행동기가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가정폭력의 그늘 아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 온 두 자녀에게 이 사건 범행으로 아버지는 어머니의 살해범행의 대상이 돼 생을 마감하고, 어머니는 살인범이라는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과 멍에를 지게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나 ㄱ씨가 장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왔고, 범행 직전에도 남편이 ㄱ씨에게 욕설을 하고 침을 뱉는 등 폭행을 하며 아이들에게까지 가자 범행을 저지른 점, 심각한 가정폭력에 오랫동안 고통을 받던 ㄱ씨가 더이상 견딜 수 없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렀다고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감경했다.

자신이 살해한 남편의 어머니인 시어머니가 법정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며느리에 대한 선처를 구하고, 이웃주민들까지 선처를 탄원하는 점 역시 ㄱ씨가 징역 4년을 받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재판부는 전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