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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쪽방촌 - 술 중독·병마에 쓰러져도…주검 곁엔 아무도 없었다

맑은샘77 2010. 7. 20. 22:55

술 중독·병마에 쓰러져도…주검 곁엔 아무도 없었다

한겨레 | 입력 2010.07.20 19:50 | 수정 2010.07.20 21:00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제주

 

[한겨레] 영등포 쪽방촌의 죽음 올해만 15명


제대로 된 치료도 못받고 주검 며칠째 방치되기도


가족은 수소문해도 외면


"올핸 장례만 치르다 끝나 자활·의료지원 확대 시급"


좁은 골목에 들어서니 오물에 찌든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난 14일 오후 찾아간 서울 영등포 쪽방촌은 무더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가로·세로 2m도 채 안 되는 좁은 쪽방에서 도는 선풍기는 연신 더운 바람을 뿜어냈다. 주민들은 수시로 골목에 물을 뿌렸다. 10년 전 집에 불이 나 가족을 잃은 뒤부터 혼자 쪽방 생활을 하고 있는 유아무개(62)씨는 "1층은 좀 낫지만 2층은 햇볕이 들면 도저히 집 안에 있기가 힘들 정도로 찜통이 된다"며 "밤에는 밖으로 나와 땅바닥에 종이상자를 깔고 잠을 잔다"고 말했다.

5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곳 영등포 쪽방촌에서 올해만 15명이 주검이 되어 실려나갔다. 이 쪽방촌의 사망자 수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장은 "지난해부터 쪽방 사망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며 "올해는 장례만 치르다 다 지나갈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4월 쪽방에서 당뇨와 알코올중독 등으로 숨을 거둔 함금실(54)씨의 주검은 죽은 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함씨의 남편 김아무개(51)씨는 아내의 주검과 한 이불을 덮으며 며칠을 보냈다. 함씨의 주검을 처음 발견한 김 소장은 "부부가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아 쪽방을 찾아가 보니, 두 분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아저씨에게 '아주머니는 건강하시냐'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어 계속 물어보니, 그제서야 '이상하게 숨을 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불 사이로 나온 함씨의 다리를 만져보고 온기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경찰서 지구대에 신고하고 장례를 치렀다.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김씨는 현재 의정부힐링스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다.

이춘식(74)씨는 폐암으로 죽었다. 고향이 이북인 그는 6·25 때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 뒤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쪽방촌에 없다. 이씨는 10여년 전부터 전국의 노숙인 쉼터를 전전하다 7년 전 홀로 이곳 쪽방촌에 정착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담배와 술이 생활의 전부였던 이씨는 결국 폐암을 얻었다. 쪽방에서 잠깐 한 할머니와 살림을 꾸리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이씨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자 떠났다. 진통제로 하루하루 고통을 버티던 이씨는 결국 지난 5월4일 좁고 지저분한 쪽방 안에서 숨을 거뒀다. 장례식에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는 2003년 이후 모두 99명의 주민이 숨을 거뒀다. 2003년 9명이었던 사망자는 한때 주춤하는 듯하다가 2009년 18명, 2010년 상반기 15명 등으로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용산, 종로, 동대문, 남대문 등 서울 시내 다른 쪽방촌에서도 매년 10명 이상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지난 6월8일 간경화와 신부전증으로 숨을 거둔 김아무개(55)씨는 20년 전 헤어진 아들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찾아와 주검 포기각서를 썼다. 가족이 포기각서를 쓸 경우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돼, 장례는 정부가 대신 치른다. 아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7살 때인 20년 전에 멈췄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어린 아들을 무참히 때렸고, 아들의 머리는 피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아들은 그 뒤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아버지와는 전화도 한 통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포기각서를 썼던 아들은 다행히 상담소의 설득으로 친척들을 모아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 김씨의 유골을 모셔갔다.

쪽방촌에서 숨을 거둔 이들의 사망 원인은 대부분 알코올성 질환이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숨진 99명 가운데 35명이 간경화, 알코올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15명은 암, 13명은 당뇨, 고혈압, 뇌출혈 등 노인성 질환으로 사망했다. 폐렴, 결핵 등을 앓다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이도 8명이나 됐다.

오범석 나눔과미래 사무국장은 "알코올중독자를 치료할 수 있는 전담기관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라며 "자활 의지를 가진 이들이 일반 회사에서도 일을 할 수 있도록 생활 패턴을 교정해주는 인큐베이팅 시설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간사도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엠아르아이(MRI) 등 일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 있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며 "기초생활수급자나 노숙인은 비급여 항목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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