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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때 자식에게 ‘기부 바이러스’ 퍼뜨리려 합니다”

맑은샘77 2009. 9. 23. 11:52
<사랑 그리고 희망 - 2009 대한민국 리포트>
추석때 자식에게 ‘기부 바이러스’ 퍼뜨리려 합니다”
‘사랑·희망 전령사’릴레이 인터뷰 - 권이담 전북과학대학 총장
정우천기자 goodpen@munhwa.com
전남 목포시민들은 2002년 6월 권이담(80) 전북과학대 총장이 목포시장에서 퇴임하면서 ‘아름다운 약속’을 이행한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995년 취임하면서 “무보수 명예직으로 일하겠다”고 공언한 권 총장은 7년간의 민선시장 1, 2기 재직시절 받은 급여·수당 3억300만원 전액을 퇴임하면서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떠나면서도 지키기 어려운 약속까지 지킨 그의 뒷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권 총장이 기탁한 장학금은 그의 아호를 따 설립된 ‘홍제장학문화재단’(이사장 조기문 전 목포시교육장)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재단측은 그동안 155명의 고교생에게 836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로부터 7년 후 그가 실천한 ‘2차 기부’는 더욱 눈길을 끈다. 목포시장 퇴임 후 전북과학대 총장으로 일하면서 받은 급여 등 3억원을 지난 17일 추가로 홍제장학문화재단에 기탁한 것. 그는 앞으로도 계속 장학금을 출연해 총액을 10억원 이상으로 늘리고, 자녀들에게도 대를 이은 기부문화를 실천토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19일 오후4시 목포시 죽교동 학교법인 홍일학원 이사장실에서 권 총장을 만났다. 홍일중·고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홍일학원은 그가 1976년 설립했으며 현재 부인 허영애(72)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전북 정읍에 있는 전북과학대는 그가 2001년 우석대로부터 인수했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권 총장은 고령임을 잊게 할 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6시10분 목포발 KTX를 타고 서울에 가서 1시간 남짓 일을 본 뒤 다시 KTX를 타고 되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허허, 특별한 건강비결은 없어요. 세무서 근무 3년3개월, 목포MBC 사장 23년, 목포시장 7년, 대학 근무 7년을 거치면서 쉴 틈 없이 일을 하며 달려왔어요. 끊임없이 활동하고 움직인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지요. 오늘도 서울 갔다 부리나케 되돌아왔지 않습니까. 대체로 1주일에 3일은 홍일학원에, 3일은 대학에서 근무합니다.”

재단의 이름으로 쓰인 그의 아호 ‘홍제’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1970년대초, 그러니까 홍일학원을 설립하기 전에 신안교육장을 하시던 분이 ‘크게 교육사업을 해보라’는 뜻으로 ‘클 홍(弘), 가지런할 제(齊)’로 지어주셨습니다. 당시 로타리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려면 아호가 있어야 했는데 잘 됐다 싶었습니다. 결국 중·고교와 대학 운영에까지 손을 대게 됐으니 그분이 지어주신 아호가 저의 미래를 암시하는 셈이 됐습니다.”

그가 목포시장으로 재직했던 7년간의 급여 및 수당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뒀다가 장학금으로 내놓기로 결심한 배경이 궁금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남 장흥인데, 목포에 와서 돈을 벌어 회사도 만들고 학교도 인수하고 그랬거든요. 개인적으로 목포에 대해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장 당선도 시민들이 ‘객지 사람’인 저를 밀어줘서 된 것입니다. 시정에 총력을 다하는 것 외에 뭔가를 더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시의원들이 무보수였습니다. 시정은 집행부와 의회가 협력해 돌아가는데 나만 봉급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보수 명예직을 선언한 것입니다.” 보통사람이라면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일을 당연한 일인듯 이야기한 그는 “선거운동할 때는 득표전략으로 오해를 받을까봐 ‘무보수 명예직’얘기는 전혀 꺼내지 않고 당선된 뒤에야 그런 결심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집안에서 반대는 없었느냐”고 묻자 “왜 없었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식들 다 가르쳤고,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지 않으냐고 설득했더니 안사람이 따라줬다”는 것. 그가 ‘다 가르쳤다’고 한 자녀는 3남1녀. 큰 아들(46)은 가톨릭대 의대 교수, 차남(43)은 아버지의 학교 운영을 돕고 있고, 3남(41)은 코스닥 상장기업 K사 대표, 딸(47)도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권 총장은 이번에 3억원을 추가 기탁하기 전에 가족과 상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번 결심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자신의 스타일을 가족들이 인정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왜 이 시점에 추가로 기탁을 했을까.

“2002년 처음 기탁할 때 3억300만원은 비교적 큰돈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됐습니다. 수업료는 인상된 반면 금리는 낮아져 기금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더 적어졌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돈을 더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한 겁니다. 앞으로 내 힘으로 10억원 이상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교육사업을 꾸준히 하다 보니 사명감이 더 생깁디다. 처음에는 호기심도 있었고, 좋은 사업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까 책임감도 생겼어요.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주고 명문대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요. 완전 평준화가 실시되던 시절에는 홍일고의 명문대 합격률이 목포시내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홍일고생들이 명문대에 합격하면 대학 수업료 및 입학금 등을 지원해줬습니다.”

그는 상당수 졸업생들이 나름대로 성공해 학교를 찾아온다며 얼마전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야간에 고교를 다녔던 한 졸업생이 군 장성(소장)이 되어 이사장, 교장 등에게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밥은 당신이 사지만 밥값은 내가 내겠다’며 계산을 치렀는데,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그의 ‘장학 바이러스’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파됐다. 5년 전 홍일고 교장으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한 윤창식(67)씨가 2차례에 걸쳐 4000만원의 장학기금을 별도로 만들어 운용해오고 있다. 이 장학금은 우수한 성적으로 홍일고에 입학한 학생에게 지급되고 있다. K종금도 권 총장의 뜻에 발맞춰 홍제장학문화재단에 1000만원을 보탰다.

권 총장은 올해 추석 명절때 자녀들이 찾아오면 대를 이어 홍제장학문화재단을 키워줄 것을 권유할 계획이다. “견실한 기업을 일구고 있는 셋째 아들에게 먼저 얘기를 꺼내겠습니다. 처음부터 많이 출연할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나눠 내라고 할 겁니다. 우리 가족부터 기부문화를 함께 실천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번 3억원 추가 기탁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 쑥스럽다고 했다. 그는 “홍일고 학부모 중에 기자가 있는데 어떻게 알고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쓴 것 같다. 애초에 알리려 하지 않았고, ‘왼손이 모르게’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날 그가 앉은 의자 옆 탁자에는 신간 서적들이 여러권 놓여 있었다. ‘경성상계’‘탤런트 코드’, ‘최고의 교수’ ‘마흔에서 아흔까지’ 등 그가 요즘 읽는 신간들이라고 한다. 별다른 취미가 없을 때 취미란에 ‘독서’라고 기재하는 이들도 있다지만, 그는 독서가 자신의 진짜 취미라고 강조했다. “목포MBC 사장을 23년간 하다보니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됐습니다. 대화를 하려면 다방면에 걸쳐 알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책을 읽게 됐습니다. 지금도 매월 5~10권의 단행본과 주간지, 월간지까지 읽습니다. 오늘 서울 출장때는 열차 안에서 스크랩된 신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눈이 나빠져서….”

그의 또다른 취미는 여행이다. 세계 각국의 유명한 곳은 거의 다 가봤다고 한다. 한때 취미로 했던 골프는 7년 전 목포시장 퇴임 직후 유럽여행을 갔다가 오른팔을 다친 뒤 그만두었다.

화제를 다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로 돌렸다. ‘세평’을 잘 못하면 욕을 얻어먹는다고 주저하던 그는 잠시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칭찬이 부족한 듯합니다. 좋은 일을 하면 축하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한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작은 기부를 하면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저러는데 우리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적으면 적은대로 나누려는 사람도 생길 것입니다. 장학사업이든 불우이웃돕기든 그런 분위기가 확산됐으면 합니다.”

목포 = 글·사진 정우천기자 goodp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