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목회

[스크랩]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다/롬 5:3-4

맑은샘77 2009. 3. 14. 00:36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다 / 롬 5:3-4

오늘은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말은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시골에 사는 자매가 몹시도 힘들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으로 이겨가고 있었지만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주여, 너무도 힘듭니다! 주여 너무 힘듭니다!" 이렇게 말할 정도 였습니다.

어느날 꿈을 꾸는데 그녀가 커다란 십자가를 질질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주님은 목수이시지 않습니까? 이 십자가를 잘라주세요."
이에 주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잘라 주셨습니다.
자매는 꿈속에서 세 번씩이나 자기의 십자가를 잘라달라고 하였습니다.
한결 가볍고 편안한 듯 하였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요단강이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뒤에 오는 다른 사람들은 긴 십자가를 강에 턱 놓더니 그 십자가를 다리 삼아 하늘나라로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십자가는 이미 손아래 들어올 정도로 너무 작았습니다.
자매는 너무 서러운 나머지 강가에 턱썩 주저 앉아 엉엉 울며 예수님을 찾았지만 이미 소용은 없었습니다.

그 때 그 자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쫓아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지니라" 그 자매는 이에" 아멘! 아멘! "소리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고난은 필수적입니까?
불행히도 그것은 '예'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고난이 힘들어 십자가를 잘라달라고 했던 자매의 모습... 이 역시 우리에게 남의 일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고난 가운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고통하며 신음하는 것을 결코 즐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레미야 애가 3:33에도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고난을 사용하십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로 유익케 하심입니다.

만일 고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더 해이해지고, 육신의 안일 만을 쫒고,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고민거리 하나 없이 술술 잘 풀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죽어라고 기도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쉽지 않은 일임을 제가 알고 여러분이 압니다.

영적인 것에 대하여는 무관심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도 갖지 않을 것입니다.
칼빈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고통이 많은 것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으며,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씀합니다.

만일 환난이 없다면 인내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연단도 없을 것이고 소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이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고난의 유익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고난에도 유익이 있을까요? ‘예’성경은 고난도 유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는 고난에는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첫째로,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하면 그 뒤에는 고통의 과정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남들처럼 놀고 싶은 것 다 놀고, 자고 싶은 것 다 자고, 하고 싶은 것 다하자면 무슨 영광이 있겠습니까?

둘째로, 고난 없이는 발전도 없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한 단계 뛰어 넘으려면 고난과 고통의 댓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공짜는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근력을 키우려고 할 때도 한계를 극복하는 고통을 받아야 근육이 붙고 힘이 붙는 것입니다.
운동도 힘들이지 않고 하면 별 유익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그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은 영적으로 강건해져가야 합니다.
영적으로 강해진다는 것은 죄를 이기고, 육체의 소욕을 이기며, 마귀를 이기는 힘이 강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저절로 될까요?

영적인 투쟁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처절한 싸움이 없이는 안됩니다. 고난과 고통의 풀무를 통과하지 않고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고난과 고통의 풀무를 통과 할 때 정금 같은 믿음, 승리의 전신갑주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고난 없이는 귀한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명검일수록 많이 두들겨 맞고 손이 많이 가는 법입니다.
여러분 지금 고통 가운데 있으십니까? 고통이 많으면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아! 하나님이 나를 명검으로 만드시는가 보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혹독한 연단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연단을 당할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습니다.

요셉은 흠잡을 데가 없었던 사람이고, 특별히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죄 없는 것으로 치면 성경에 기록된 인물 가운데 가장 무난한 인생을 마친 [이삭]과 비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삭과는 달리 요셉은 지독한 고생을 합니다.

심한 연단을 받았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말로는 부족한 요셉입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기보다는 잘한 것만 있었던 요셉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요셉도 그냥 이삭처럼 별 어려움이 없이 잘 살도록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셉의 경우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삭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요셉같은 경우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의아해 하는 경우입니다.

“나는 그래도 하나님 앞에 충성과 헌신과 봉사로 열심을 드렸고, 세상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믿음을 지켰고,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시험이 오고 고난과 고통이 다 가올 때 우리는 고민하고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아무런 죄도 없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성실하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생각에는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면서 요셉의 의와 선함을 입증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명을 그대로 뒤집어쓰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감옥에 들어가도록 그대로 두고 보고만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몇 년을 푹 썩게 그냥 놔 두셨습니다.
제3자라면 몰라도 요셉 본인이라면 "어떻게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라고 할 만한 경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이리 하신 것입니까?
왜 선한 요셉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하신 것입니까?

시편 105편 17-19절에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요셉을 명검을 만들기 위해 단련시키려고 그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단련하심이 목적 없는 단련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선발대로 파견되었다는 말씀이요, 이 일을 위해서 요셉은 단련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죄 없이 고난을 당해야 했던 것은 애굽의 총리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앞으로 있을 흉년에서 온 가족은 물론이요 수많은 사람을 기근으로부터 구원해 내기 위한 사명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독한 연단이 필요했습니다.

신앙인의 길에는 [이삭]처럼 온전하고, 의롭고, 그래서 별 시련 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가 하면 같은 신실한 신앙인이라도 [요셉]처럼 죄지은 것도 없이 수많은 시련과 연단을 겪어가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요셉과 같이 믿음 생활도 열심히, 충성과 봉사도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시련과 연단을 겪는 분들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로 근심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시련과 연단을 통해 “가정을 회복하시고, 가정을 구원하시고, 가정에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시련과 연단을 통해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함이요, 여러분의 생업에 복을 주시기 위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연단 그 고통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크게 쓰시기 위해, 또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게 하시기 위해 내게만 특별히 주시는 연단과 고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연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감당 못할 시험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십시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어떤 문제 앞에서도 이렇게 말하십시오. "이것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문제다." 모든 문제에는 해답이 있는 법입니다. 답이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조금 난해한 것일 뿐입니다.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답이 빨리 눈에 띄지 않을 뿐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못살겠다, 죽겠다, 망했다" 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풀어야 할 문제가 또 하나 생겼구나, 이 문제 풀면 실력이 많이 향상되겠구나."
둘째로, 끝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시련과 고통이 올 때 참고 견디는 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약 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하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문제만 보면 안됩니다. 문제만 보면 문제 속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바로 그때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문제 속에 빠져서 한숨만 쉬고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습니까?
기도할 때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짓겠습니다.
살다보면 생각지 못한 고난과 역경을 종종 만납니다.
그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외치십시오.
"이것은 나를 넘어뜨리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나를 더 괞찮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오는 것이다, 감당치 못할 시험은 없다, 나는 이긴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도 능히 이기는 축복된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행복충전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