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생활상식

유럽여행 떠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문화지식

맑은샘77 2008. 5. 11. 14:30
유럽여행 떠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문화지식

 

유럽여행을 흔히들 문화여행이라 한다.  대부분의 여행코스에 유럽의 문화유적탐방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기간은 짧고, 모자라는 시간내에 많은 곳을 고 다녀야 본전을 뽑는 것은 사실. 이 기간 여행가이드들 통해 설명되어지는 수 많은 설명들은 자장가로만 들릴 뿐이다. 문화 유적지에 담겨있는 수 백년의  역사와 문화가 아무리 간략하고 명료하게 설명될지라도 이를  짧은 기간내 소화하기는 벅차다.

 

이는 유럽예술사의 기본 흐름을 알지 못하고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좋은 유럽 여행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알고 가야 할 몇 가지 포인트를 3편에 걸쳐 소개한다.

1. 헬레니즘 문화와 헤브라 문화를 구분하라!!!

 

유럽의 건축문화는 크게 두 가지 흐름 속에서 만들어 졌다.       바로 헤브라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다.많은 건축물들을 보며 여러 설명을 듣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한 유럽 가이드들의 설명은 결국 둘로 압축된다. 헤브라양식의 건물과 헬레니즘양식의 건물로 말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의 의식구조와 예술문화가 이 두 가지 사조에 기반을 둔다.  건축양식은 이에 대한 표상일 뿐이다.

 

헤브라문화와 헬레니즘 문화를 구분할 경우 지어진 건물의 연대를 대략적으로 쉽게 꼬집어 낼 수 있다. 또한 수 백 년의 세월을 지나오며 여전히 남아 있는 여러 유럽의 국보급문화재를 보면 건축가가 어떤 생각으로 건물을 지었으며 그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럼 헬레니즘 문화란 무엇일까? 헬레니즘 문화는 잘아는 바와 같이 그리스의 문화가 알렉산더 왕의 페르시아 정복과 함께 페르시아지역으로 들어가 오리엔틴 문화와 융합하여 새로 탄생된 문화다. 곧 헬레니즘 문화는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틴문화가 합쳐진 퓨전문화다. 유럽건축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오니아 양식 고린트 양식 등이 모두 이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로마와 그리스의 문화는 로마제국멸망과 함께 유럽에서 사라지며 유럽은 문명의 암흑기로 들어간다. 로마를 적으로 여겼던 게르만 민족은 적국의 문화를 축출해 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이런 로마의 문화를 대체하며 유럽에 새롭게 등장한 문화는 1천 년 이상 유럽을 지배해온 헤브라문화다. 헤브라 문화는 간단히 말해 기독교문화다.

 

 

독일은 각 지역에 교회를 세우며 로마교황으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지위를 얻는다. 이 시기의 문화의 특성은 오로지 기독교라는 점이다. 교회는 도시문화의 중심이었으며 문화와 예술은 기독교안에서만 존재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중세라 하는데 "중세는 기독교다 "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중세의 전형적 기독교 문화는 북유럽에서 발전했다. 알프스산맥이라는 거대한 지형적 장애는 문화의 유통흐름을 막았다. 그러나 문화교류에 소외되었던 땅 알프스 남쪽 지금의 이태리 지역에서는 거대한 문화적 반란이 일어난다.

 

이태리는 르네상스 운동의 진원지로서 유럽에 새로운 문화부흥을 주도했다.  르네상스라는 말은 자세히 살펴보면 중세라는 단어의 반동이다. 이태리 사람들은 헤브라문화가 북유럽에서 융성하던 그 시기를 과거 찬란했던 문화에서 앞으로 다가올 영화로운 문명의 과도기 즉 중간기라 생각하며  중세라 불렀다. 그리고 그리스 로마 문화가 복원되며 선풍적인 예술 트랜드가 탄생되자 이태리사람들은 르네상스라는 말을 썼던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헤브라 문화는 결국 로마가 멸망한 주후300년 말 부터 유럽에서 새로운 문화로 정착한다. 헤브라문화의 절대성은 르네상스가 탄생하기 전까지 유럽을 지배했다. 그러나 시대에 대한 반동은 종교라는 절대적 문화장애도 극복한다. 그리고 르네상스는  북유럽으로 순식간 퍼져나갔다.

 

결국 전형적인 헤브라양식과 르네상스양식 그리고 여기서 발전된 바로크 양식을 구분해 낼 수 있다면 유럽을 여행하며 건축물을 볼 경우 건축연도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건물의 외관을 통해 시대적 예술사조를 파악할 수 있을까?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건물에 세워진 여러 조각상들을 보면 된다.

 

14세기 까지 성행했던 헤브라 문화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독교문화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나오는 여러 인물들과 성인들의 조각상으로 건물을 꾸몄다. 건축물에 있는 성상이 기독교적 테마를 유지하고 있다면 당연 헤브라문화다.

 

또한 헤브라 문화는 고딕양식이 뚜렷하다. 고딕양식은 첨탑아치형과 상향성으로 압축된다. 들어 가는 입구의 문과 창문이 첨탑아치형을 하고 있으면 고딕이다.

 

반면 르네상스양식은 헬레니즘문화로 그리스 로마문화의 복원이다. 여러 그리스 신들의 조각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그리스의 신들로 채워진 건물이라면 르네상스 양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바로크 양식은 어떨까? 바로크 양식은 르네상스에서부터 발달한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교회만이 예술을 독점하고 있었다. 이런 교회의 독점권이 르네상스를 지나 바로크시대에 오며 사라지게 되었고 각 지방의 영주들은 자신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성경의 위인들만 모티브가 되었던 예술작품을 자신들의 모습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즉 군상이 있다면 르네상스가 아니라 바로크가 된다. 바로크는 17세기에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런 시대적 예술사조를 가장 잘 설명되는 곳 몇 곳의 예를 들어 보자.

 

로텐베르크는중세의 보석이라 불리는 도시다. 이 도시는 30년 전쟁이 피해간 곳으로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명 아래 카톨릭군대를 이끈 틸리장군은 로텐베르크를 점령하나 도시를 파괴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30년 전쟁 동안 카톨릭군대는 로텐베르크에 주둔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도시를 떠나게 된다.  오랜 기간 군사기지로 경제권이 형성되었다가 카톨릭군대가 갑작스레 떠나자 도시의 경제력은 약해졌고 많은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로텐베르크를 떠났다.

 

도시 경제권이 몰락하자 많은 사람들은 로텐베르크를 죽음의 도시로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르네상스의 바람이 유럽에 몰려왔으나 로텐베르크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기에 발전을 하지 못했다. 당시 이렇게 버림받은 도시는 세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기에 중세 고유의 모습을 지금까지 간직할 수 있었다 즉 바로 헤브라문화만이 살아 있는 곳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군주의 조각상이나 그리스의 신의 조각상을 거의 볼 수 없다.

 

그러나 30년 전쟁이 스쳐간 하이델베르크를 보면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중세시대의 건축물은 모조리 파괴되고 르네상스 양식부터 다시 지어지게 된다. 때마침 이 기간 자연스럽게도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예술사조가 독일에 들어 오는데 하이델베르크는 르네상스식의 건물로 새롭게 치장하게 된다.

 

하에델베르크 성에 들어가 보자. 오토 하인리흐 궁은 상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전히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 건물에 조각된 여러 입상들은 제우스신 아폴로신을 비롯해 여러 그리스 신들로 들어서 있다. 바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이 오토 하인리흐 궁은 당시 북알프스지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불렸던 르네상스 건축물로 손 꼽힌다.

 

 

 하이델베르크 오토 하인리흐 궁, 제일 꼭대기에 제우스 신이 서 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프리드리흐 5세의 궁을 보자. 한 눈에 봐도 조각상의 주제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16개의 왕들의 조각들로 꾸며져 있다. 왕과 왕가의 권위를 알리고자 했던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프리드리히 5세 궁

 

그런데 다른 도시를 가게 되면 가끔 첨탑아치형의 모양과 하늘을 향해 쏟아 있는 고딕양식의 건물들 앞에 군상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고딕은 중세시대의 산물로 전형적인 헤브라문화인데 왜 이런 속세적인 조각상들이 있을까? 뮨헨 마리엔 광장에 있는 신시청사를 본다면 여행객들은 바로 그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고딕시대에도 과연 군주가 예술의 객체가 되었을까?

 

그러나 그런 의문을 품게 해주는 건물이 있다면 그 건물은 네오고딕양식이라는 점을 알아두자. 네오고딕 양식은 18세기 때 성행했다. 18세기 바로크가 지나간 뒤 예술적 복고풍이 불었다. 그래서 많은 군주들은 12-13세기 당시 고딕양식과 같은 흡사한 건물들을 세웠는데 건축모양만 본다면 아무리 여행전문 가이드라 할 찌라도 고딕과 네오고딕을 구분 못 할 정도다.

 

 뮨헨 신시청사

 

 고딕양식의 건축물 앞에 나와 서있는 조각상들이 성경에 나오는 성인들 보다 군상들로 채워져 있다면 네오고딕으로 18세기 작품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럼 네오고딕은 왜 나왔나? 바로크시대를 지나며 많은 군주들은 자신의 권위와 위상을 살려주는 매번 반복되는 동일한 표현방식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군주들은 이렇게 새로운 것을 찾는 중 기독교문화의 가장 전성기를 알리며 교회의 권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고딕양식을 통해 자신들의 위엄상을 독특하고 이전 보다 다르게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유럽의 여러 건물들은 이렇게 헬레니즘 문화와 헤브라 문화의 결합과 반복으로 그 맥을 유지하며 통일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두 흐름만 구분을 해도 유럽의 많은 건물들에 대해 건축된 연대시기와  건축물의 의미를 쉽게 유추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는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무단 전재 배포 금지 www.nanum.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