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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울팔경의 선정에 대하여

맑은샘77 2007. 11. 9. 15:21

 

서울팔경을 정한다는 소식을 듣고


최근 TV뉴스에서 보니 서울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을 뽑아서 서울팔경으로 선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서 서울에서 눈으로 보는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을 뽑는다는 내용으로 이해되는 서울팔경의 선정에 대해 한 가지 걱정되는 바가 있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마포나루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경치가 가장 좋은 여덟 곳을 뽑아서 서울팔경으로 한다는 뉴스의 내용 때문인데, 경치가 가장 좋다는 말은 주로 눈으로 보이는 경치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그렇다.


원래 팔경이란 것은 경치를 중심으로 뽑은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풍광(風光)과 마음으로 보는 심미(心美),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담을 수 있는 풍속(風俗)의 세 가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행여 서울시에서 눈으로 보는 경치만을 가지고 팔경을 선정할까봐 걱정을 앞세우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팔경은 어디서 유래했고,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미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는 수많은 팔경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관동팔경이라고 할 수 있다.

  소상팔경도


그런데, 이런 팔경들의 원조는 중국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소상팔경(瀟湘八景)이다.  소상팔경은 중국 후난성[湖南省] 둥팅호[洞庭湖] 남쪽에 있는 샤오수이[瀟水]와 샹장[湘江]이 만나는 곳에 있는 여덟 가지 경치를 말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봄이 되어 산과 저자에 어리는 아지랑이를 가리키는 산시청람(山市晴嵐), 내가 낀 사찰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인 연사모종(煙寺暮鐘), 멀리 포구로 돌아오는 범선의 모양을 지칭하는 원포귀범(遠浦歸帆), 어촌마을의 한 귀퉁이로 지는 햇발을 묘사한 어촌낙조(漁村落照),


소상강에 밤 비 내리는 소리에 옷깃을 적시는 소상야우(瀟湘夜雨), 가을에 동정호 위에 뜬 달을 말하는 동정추월(洞庭秋月), 평평한 모래 벌에 일자로 내려앉는 기러기를 표현한 평사낙안(平沙落雁), 추운 세밑에 강 위로 내리는 눈을 말하는 강천모설(江天暮雪) 을 일러서 소상팔경이라고 한다.


위의 내용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여기서 말하는 팔경은 단순한 경치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경치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것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복합적인 것이란 사실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평사낙안


예를 들면 소상강에 내리는 밤비 소리 역시 순임금의 두 왕비로서 이곳에 와서 세상을 떠난 순임금을 따라 죽음으로서, 그 눈물이 소상강가에 있는 대나무에 반점으로 찍혔다는 애틋한 사연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것으로 느끼기가 어렵다.


그리고 동정추월은 단순한 달이 아니라 가을의 밝고 둥근 달이면서 동정호에 비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동정호의 아름다움과 가을이라는 정서가 합쳐지지 않으면 제 맛을 낼 수 없는 것이 된다.


이러한 점은 팔경의 다른 것도 마찬가지인데, 이것은 우리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서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비들이 자신의 고향에다 각각의 특징을 나타내는 팔경을 만들었으며, 소상팔경을 소재로 하는 엄청난 숫자의 시를 남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상팔경에서 비롯된 우리나라의 팔경문화는 문화적으로 엄청난 위력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각 지역의 팔경들 역시 소상팔경의 이러한 의미를 우리 식으로 바꾸어서 표현한 것이 중심을 이룬다.

  인왕재색


이런 점으로 볼 때 서울팔경을 정할 때는 경치만을 대상으로 하여 뽑아서는 안 될 것으로 사료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으로 보는 아름다움과 경치가 결합됨과 동시에 서울의 문화를 담아낼 수 있는 그런 곳을 팔경으로 정하는 것이 팔경의 본래 의미에 가장 잘 부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문화적 깊이를 간직한 그런 서울팔경이 정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팔경을 선정하는 서울시 담자의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연사모종

 

출처 : 우리문화사랑방
글쓴이 : 죽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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